게임을 왜 하는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제는 듣기 싫은 진부하기만한 질문일거라 생각한다.
약속에 나가기전 잠깐 시간이 비어서, 대중교통을 타면서 손이 비어서, 친구들과 놀기위해 등 각자의 상황에 맞추어 다양한 이유들로 게이머들은 게임을 한다. 그래도 단 하나의 이유를 고르자면,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서 게임은 재미가 있기에 게임을 한다.

그렇기에 게임은 자신이 플레이할 때 재미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세상에는 감사하게도 휘발성의 재미뿐만아닌 플레이어의 마음과 기억에 흔적을 남기는 게임들이 있다.
필자에게는 사이버펑크 2077라는 게임이 여기에 속한다. 플레이어로서 게임 속 세계의 사건들과 부딯치고 게임의 외적으로는 시청자로서 애니메이션을 바라보았다. 두 가지의 콘텐츠에서 계속해서 하나의 질문을 CDPR이라는 개발사는 이야기한다. 그대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라고

그 해 모든 올해의 게임 상을 수상할 것만 같았던 ‘위처’ 시리즈의 개발사 CDPR의 새로운 IP인 ‘사이버펑크 2077’은 아쉽게도 세간의 기대에는 부흥하지 못했다. 적어도 출시 당시에는 다양한 버그와 홍보했던 내용과는 다른 플레이 방식에 상당히 박한 평가를 받았었다.
그럼에도 CDPR은 포기하지 않(못)했고 게임을 수리했고, 악평과 버그속에 감추어져있던 수 많은 이야기들과 개발사가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들을 유저들이 보기 시작하면서 평가도 지금에 이르러선 강점이 있는 수작으로 게임의 역사서에 적힐 것 같다.

좋은 평가를 받은 후속 DLC를 끝으로 CDPR은 더 이상의 업데이트는 없다고 발표하여 게임의 주인공 ‘V’의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애니메이션 ‘엣지러너’의 흥행에 힘입어 후속편이 나온다고 하니 아직 ‘나이트 시티’의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기에 필자는 고양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하나의 게임과 하나의 DLC, 그리고 12화로 진행되는 애니메이션 두 작품까지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CDPR과 트리거(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이다.)는 담아내었다. 등장인물들의 각각의 이야기와 경험들을 필자 스스로의 감상으로 후기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적어내고자 한다.
향간에 들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CDPR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트리거에게 자신들의 ‘사이버 펑크 2077’의 IP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데 한 가지 당부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 해피 엔딩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

본편의 애니메이션 전개를 보면 몇 화에 걸쳐 빌드업 해온 등장인물들이 가차없이 사망한다. 그리고 주인공들 마저 그들에게 있어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이러한 기조는 IP의 메인인 게임 ‘사이버 펑크 2077’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작중 플레이어가 플레이하는 주인공 ‘V’는 시한부라는 말을 게임의 초반부터 설정되어있으며 그 주변인물들조차 게임이 진행되고 사건이 심화되어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중 가장 친하게 지냈던 인물은 게임의 초반, 튜토리얼에 해당하는 파트에서 잃어버리기까지 한다.
이러한 전개는 자칫 잘못 연출한다면 유저로 하여금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 안에서 죽음이라는 것을 정말 가벼이 다루고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함께 자신과 움직이던 캐릭터들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어 허무함과 허탈함이 남겨진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어차피 다 죽을 거니까…라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한 작품에서만의 전개적 연출이였다면 위험한 이야기 전개 방법을 사용하고 있구나 생각하게 되지만 ‘사이버펑크’라는 IP에서 모든 작품들이 해당 방법을 사용한다면 이는 제작사인 CDPR에서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연출해내고 있다는 방향성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왜 CDPR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일관되게 하고있는 것일까?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개인이라는 하나의 개체의 중요도는 높아지고 있다. 기계의 흐름에 맞추어 부품이 되는 것이 중요했기에 집단에 잘 스며드는 법이 중요했던 20세기를 지나고 인간의 도움이 필요없어질 정도로 기계는 발전되어 개인 때로는 하나의 집단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흐름이 바뀌었기에 질문도 바뀌게 되었다. 사람들은 발전된 기술을 가지고 개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사이버 펑크에서는 여기서 한번 더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더욱 발전된 기술과 과학으로 이제는 개인조차 필요 없어지고 모든 것이 자동으로 바뀌었다. 발전된 기술을 통제하는 일부 기업들의 인원들을 제외하고는 인류는 마련되어있는 것들을 향유하기만 하면 되게되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조차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CDPR은 작품을 통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시대더라도 선택해야할 것은 있다고.
게임에서는 어디에서 스타트할지 정할 수 있다. 기업의 요원으로, 매드맥스와 같은 무법자로, 뒷골목에 흔히 있는 깡패로. 하지만 이것을 정하는 것은 아직 ‘V’ 되지 못한, 해당 게임 세계의 일원이 되지 못한 신에 가까운 위치의 유저가 고르는 것이다. 시작 스토리 정하고 커스터마이즈를 완료하여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에게는 정해져있는 현실일뿐.

태어나는 것은 정할 수 없다. 어떤 삶을 살아도 의미는 없다. 그렇기에 CDPR은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죽을지는 고를수 있다고.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 중 죽음을 맞이한 인물들은 어떻게 죽었는지 묘사하고 보여준다. 하물며 애니메이션에서 죽은 인물을 기리는 술을 게임내에 넣어놨을 정도로. 하지만 작품의 끝까지 살아남은 인물들은 이후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지 않고 열린 엔딩으로 맞이한다.
이러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이버펑크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게임과 애니메이션 둘다 나온 순간 본 것은 아니였지만, 이 시리즈들을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재밌게 즐겻고 많이 울었던 작품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작품일 것 같다. 또한 이 시리즈가 처음부터 끝까지 주고 있는 질문에 대해서는 나날이 발전해나가는 시대에서 언젠간 맞이하게될 질문일지도 모른다.
